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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복제품이라고 작품까지 복제품일 필요는 없잖아요, <미키17>

무속인(無屬人) 백 2025. 3. 26. 18:50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감상글입니다.

 

 

출처 : 왓챠피디아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극호 중호 소호 소불호 중불호 극불호

 


 

 

<미키17>을 연출한 감독은 다들 아시다시피, <기생충>으로 독보적인 육각형 연출을 실현시킨 감독이기 때문에 나 또한 신작은 무조건 봐야지 싶었다. 로버트 패틴슨과 합을 맞춘다, SF 장르다, 소설 원작이다, … 워너 브라더스사와 최종본에 대한 갈등이 불거져 개봉일자가 늦춰졌다 등 자잘한 소식을 들으며 알게 모르게 기대감은 커져갔으리라 생각한다. 평소에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감상하는 걸 선호하기도 하고, 어느정도 명작 선에 들겠지 예상되는 작품들은 더더욱 첫 눈으로 보고 싶기 때문에 이번 <미키17> 또한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섰다. 아, 평소 트위터로 여러 분야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리뷰는 ‘어떻게 현 정국이 되기 한참 전부터 제작되었을 작품이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했지?’라는, 봉준호 감독스럽게 블랙 코미디스러운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더니, <미키17>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다. <기생충>처럼 날카롭게 계층을 비판하고도 싶고, <옥자>처럼 생명 윤리를 깨닫게 해주고도 싶고, SF 장르의 독특함도 살리고 싶고, 그 너머의 수많은 사회 이슈를 담고 싶어서 되려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나온 뻔한 연출과 뻔한 대사의 향연이다. 무너져 가는 탑에 블랙 코미디까지 얹으려고 하다가 결국 무너져 내린다. 그나마 초반부에는 극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정보들이 많이 나와서 이해하는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있었는데, 후반부에는 모든 인물의 대사와 스토리 진행이 급박하게 몰아친다. 도대체 왜 모든 인물들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왜 이렇게 연출하신 걸까? 하필 컨디션 좋은 상영관으로 간 탓에 사운드가 너무 깔끔하게 구현되어서 시끄러워 귀 막고 싶었다.

 

이게 15금이라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을 나가려고 하는 순간, 앞 좌석에서 내 마음 속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거 15금 맞아?’ 제가 봤을 땐 아니요.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그러한 연출이 꼭 필요한 장르가 아닌데도 남발한다. 그렇다고 <미드소마>처럼 감탄사가 나오는 기괴함도 아니다. (심지어 미드소마는 청소년 관람 불가였다) 감독 본인도, 제작사도 모두 느꼈을 텐데 극장 관객에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서 눈 가리고 아웅한 것 같다고 느꼈다.

 

진짜 궁금한 건데, 기승전결에서 전->결로 향하는 중요한 씬의 해결책이 대체 왜 성적 체위랑 이어질까? 진심으로 이게 재밌나? 그렇다기엔 용산 CGV 좌석이 꽉 찰 정도로 남녀노소 인원이 그렇게 많았는데 웃음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캐릭터가 복제품이라고 작품까지 복제품일 필요는 없잖아요,

작품을 감상한 직후 왓챠피디아에 등록된 후기들을 여러 가지 살펴봤는데 눈에 띄는 리뷰가 있었다. 봉준호 감독을 따라하는 누군가가 만든 작품 같다고, 읽자마자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다. 위에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감독의 지난 연출작들이 오묘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이 너무 많다. <기생충>과 <설국열차>의 사회 계층 비판, <옥자>의 생명 윤리 강조, 뿐만 아니라 <괴물>의 크리처 생김새와 크리퍼의 생김새가 너무 비슷하다. 크리퍼의 입을 왜 굳이 클로즈업했을까...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그래도 좀 새로운 디자인의 크리처인가 싶을 뻔 하다가 입이 너무 비슷해서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미키17>

 

(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오)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크리퍼에 대해서 짚어볼 부분이 더 있다. 우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괴물 ‘오무’의 생김새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주요 씬의 구성 자체가 똑같다. 지능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무시했던, 그저 짐승일 줄 알았던 개체들이 지능적으로 인류에 대척하며 가늠할 수 없는 동선으로 광활한 대지를 채우는 것. 보자마자 그냥 똑같았다. 그나마 크리퍼의 차별적인 특성은 소리, 독특한 음파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외에도 한 개체가 공격 받으면 모든 개체가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설정은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가 생각났다. 시즌2에서 등장하는 촉수 괴물이 땅 밑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한 부분이 공격 당하면 촉수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괴물까지도 동시에 느껴서 (다른 개체여도 그 구성은 같은 물질이기 때문에) 그 위치로 한꺼번에 모인다. 이 특징을 활용해서 주인공들이 수많은 괴물을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타파하고 성공적으로 물리친다는 스토리이다. 다른 크리처물은 잘 몰라서 그런데, 이런 설정이 흔한가? 나는 <기묘한 이야기>에서 처음 접했기 때문에 너무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온 소재였는데 <미키17>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조금 놀랐다.

 

결론

총체적으로 너무 실망했고 극장에서 본 시간이 아까웠다. 객관적으로 불쾌한 소재가 만연했기 때문에 아무리 다들 취향이 다르다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추천하지 못할 작품이었다. 감독님의 전작은 연출이 너무 세련되었기 때문에 SF 장르를 어떻게 다룰까, 어떤 세계관이 구축되었을까 하는 포인트들이 궁금했는데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의 호평 중 이런 리뷰가 있었다. ‘이것 봐, 이렇게나 직설적이고 단순한 연출로 사회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래도 못 알아먹어?’ 하는 거 같아서 좋았다고. 실제로 요즘 세상에는 간단한 상식도 어기고 쉬운 논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이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면서 속 시원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영화가 예술인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미술, 음악, 행위예술을 넘어 종합예술로 일컬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결과물이 제작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이미지, 사운드, 편집으로 어렵사리 완성되는 메시지가 갖는 의의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먼저 충족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기본도 못하면서 관객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할 있을까? 사회 이슈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명백하게 잘잘못을 짚어주는 작품이 귀한 사실도 맞지만 신중하고 깊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무속인(無屬人)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