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 국내 개봉 전부터 평론가들의 호평이 자자했다. 오스카 영화제에서 이스라엘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수상 소감으로 감독이 지닌 의식과 용기에 대한 존경심이 이미 있었고, 특히나 박평식 평론가의 9점(만점과 다름 없는)을 받은 작품이라고 알게 되어 더욱 기대가 컸다. 씨네필이라고 할 만큼의 숫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관람한 작품들에 대한 감상이 대부분 박평식 평론가와 동일한 입장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장르와 연출로 구성된 작품들에게서 느끼는 감정과 도출되는 의미가 비슷했다면 명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 또한 같은 모습을 지닐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해당 작품을 두 번 감상했다. 첫 번째는 개봉 직후 영화의전당에서, 두 번째는 놓친 장면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처음의 감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느껴보고자 최근 에무시네마에서 재개봉한 시기에 맞추어 감상했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러닝타임의 막을 내리는 부분에서 회스 중령이 끝없는 계단을 내려가며 계속 구토를 하는 씬이 특히나 첫 번째 감상과 두 번째 감상이 상이한 느낌을 가져왔다. 사실 나는 공포/스릴러 장르를 선호하지만 비위생적인 요소를 정말 싫어한다. 잔인함과 징그러움도 그리 달갑진 않으나, 그 무엇보다도 위생과 관련되어 본능적인 불쾌감을 일으키는 장면을 극도로 싫어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해당 장면 또한 처음 감상할 때는 그 행위 자체가 싫었기 때문에 귀를 막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혹여나 그 결과물이 화면에 잡힐까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초중반까지는 분명 작품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명작다운 명작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지레짐작하여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던 첫 관람을 지나 두 번째에는 모든 장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토사물이 나오지 않았다. 소리와 행동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회스 중령의 육체에 갇힌 영혼의 비명이었을까? 그곳에 그대로 있던,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인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는 속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에 임하는지, 주어지는 임무가 어떤 의의를 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봤다면 현대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철저히 분리된 사운드, 그리고 이미지

관심을 가지는 만큼 보이고, 마음 속 영역에 따라 대상이 달리 보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목에 드러나는 뜻 그자체를 극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우 정직하다. 그러나 익숙한 소재들을 생소한 방식으로 조합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새롭다. 블랙 화면에 백색소음과도 같은 자연 풍경음이 들려 온다.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몇 분 동안 화면 없이 지속되는 사운드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 메시지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면 같은 장면도 조금 더 기괴하게 와닿는다.

모든 장면들이 아름답다. 고전명화를 레퍼런스로 차용했을까 싶을 정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동선과 배경의 정보를 완벽하게 조합하는 방식의 연출이 두드러진다. 특히 위 스틸컷과 후반부에서 넓은 회의실을 꽉 채울 정도로 군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그렇다. 수많은 움직임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듯하다. 그 뒤로 보이는 아우슈비츠 건물과 담장,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고통스러운 비명은 회스 가족의 아이들에게는 새가 지저귀는 환경음에 불과하다. 선명한 자극은 이들에게 털 끝 하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넘어 하나의 색깔로 귀결되는 몽타주 시퀀스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여러가지 꽃들이 핏빛과도 같은 빨간색으로 물들고,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소리가 온몸을 옥죄어온다. 어쩌면 파동 그자체를 느끼는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이 가족의 평화로움에 익숙해지고 아름다운 미장센에 눈이 팔렸던 우리에게 고통을 각인시켜주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회스는 잠에 들지 못하는 딸에게 동화를 읽어준다. 나레이션이 나옴과 동시에 화면은 거친 길 위에서 사과를 이곳저곳에 두고 집으로 돌아 오는 한 아이를 비춘다. 동화의 내용은 빵 부스러기를 흘려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헨젤과 그레텔>이다. 빵 부스러기는 새들이 쪼아 먹는 바람에 모두 사라졌고 또 다시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숲 속 마녀가 등장한다. 사과를 먹고자 했던 유대인들이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남매는 마녀를 화롯불에 넣어 죽인다. 살아 돌아온다. 회스 중령은 처형 당하고 그들의 만행이 속속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가장 큰 포인트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그 장면에 담긴 모든 정보를 뼈저리게 이해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충격을 받고 분노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각계각층의 장르에서 만연하게 존재하는 소재를 감독만의 생소한 방법으로 표현하여 다시금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이 존경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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